여행

영국 런던여행 : 피카딜리 서커스, 런던아이

zzun 2012. 3. 2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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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보니 큰 계기가 되었던 순간들이 있다. 12살 때 아버지가 처음 컴퓨터를 사 오셨던 날, 10년 전 처음으로 똑딱이 카메라를 샀던 날, 군대에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었던 날, 그리고 2년 전 어느 여름날 소나기를 맞으며 오모리찌개를 먹으러 갔던 날까지. 별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모여서 결국 전혀 다른 인생이 되곤 한다.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던 2010년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이제와서 보니 유럽을 다녀오고 나서 내 사진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사진'이란 결국 시각의 예술인데 확실히 낯선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와서 내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든다. 시야가 넓어야 더 다양한 프레임을 볼 수 있고 그만큼 사진도 더 잘 찍을 수 있는거니까. 구석구석 걷고 또 걸으면서 무작정 셔터를 눌러대던 순간들이.. 몇 년이 지나서 '바로 그 순간'이 될 수 있을까?







일상생활은 내가 먹고 사는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서는 잘 지켜나가야 하겠지만, 그 반경이 좁으면 결국 좁은 세상에 갇혀 발버둥치며 사는 것 밖에는 안된다. 당장 내일 아침에도 6시에 일어나 똑같은 출근길을 달려가야겠지만, 그 안에서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내가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가져온 것은 수 백장의 사진들과 그 사진 안의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그 순간에 그 곳에 함께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그 날 내가 무슨 옷을 입었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누군가의 '런던 여행 기념사진' 구석쯤에 그 날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마치 끝없이 펼쳐진 평원 한 가운데 서있는 듯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2년 전 사진을 다시 살펴보는 지금도 마음 한 켠이 시원해진다.





아직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는지 익숙한 동양 음식점을 찾다가 회전초밥집으로 들어갔다. 초밥과 우동, 아사히 맥주까지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와서 기념사진 한 컷.


앗... 인사동 쌈지길?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는 심정으로 The Photographers' Gallery를 찾았다. 내가 봤던 전시는 조금은 난해한 사진들이어서 크게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 협소한 공간에 조금 놀랐지만 새 건물을 짓는 중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는 심정으로 스타벅스를 찾았다. 옷 구경 하는 사이에 해가 졌다.






혼자 하는 세 번째 여행이지만 첫 날 저녁은 여전히 외롭다. 아직 온전히 여행모드로 돌입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회전초밥을 먹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머나먼 곳으로 왔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 곳이 그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묘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둘째날부터는 적응돼서 괜찮지만, 첫 날 저녁은 그런 낯설음과 설레임에 몸부림치다 결국 숙소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 날도 역시 밤 늦게 런던 아이를 타러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고집을 부린 보람이 있었다.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런던의 야경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 저 때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참 셔터를 많이도 눌렀는데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1분 1초라도 더 눈에 담는게 훨씬 더 좋다. 물론 함께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그 날 피곤하다는 이유로 숙소에 일찍 들어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버지가 컴퓨터 대신 축구공을 사왔더라면, 10년 전에 카메라가 아니라 기타를 샀었더라면, 2년 전 소나기를 피해 구내식당을 갔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물론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그런 순간 순간의 선택들로 인해 지금 나는 적성에 맞는 컴퓨터 일을 하고, 너무 좋아하는 사진을 취미로 찍으며, 2년 전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시간 전에도 나는 이 글을 쓸지 일찍 잠자리에 들지 고민했었지만 결국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며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내일부터는 또 다른 선택의 순간들이 닥쳐오겠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내 인생을 더 흥미롭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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