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영국 런던여행 :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벤, 세인트 제임스 파크

zzun 2012. 1. 2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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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Ermin's Hotel in London, UKSt. Ermin's Hotel in London, UK

'여행 첫 날의 아침'이라고 거창하게 글 제목을 써놓고 보니 참 가슴 설레는 단어들의 조합인 것 같다. '여행', '첫 날', '아침'.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의 수치를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아마 가장 높은 시간대가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창 밖에서 들리는 낯선 언어의 대화소리에 잠을 깨고, 낯선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국적인 식단의 식사를 하고, 낯선 도시의 지도를 손에 들고, 지갑에는 낯선 화폐를 넣고. 그렇게 가방 구석구석 익숙치 않은 무언가들을 잔뜩 넣고서 숙소를 나설 때의 그 짜릿함이란...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 맛을 잊지 못해 결국 또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되는 것 같다.

전날 숙소에 늦게 도착해 새벽에 잠든 것 치고는 꽤 일찍 일어났다. 식당에선 사진으로 익히 보아왔던 푸짐한 조식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치보느라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본인의 유럽하늘 아래서의 첫 식사였다). 아침식사 후기와 인증샷은 둘째날 이야기에서 쓰도록 하자. 아침 든든히 먹고, 일정 체크하고, 카메라와 여벌의 외투도 챙기고, 흐린 런던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까지 쓰고... 드디어 출발!



나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신기해서 영상을 찍어왔다.  2010년인데도 이런 엘리베이터가?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여행을 계획적으로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정해진 일정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정했고, 목적지로 꼽은 장소들도 불과 1~2주 전에 파악한 곳들이었다. 이렇게 여행하면 관람 대상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굳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런던이라는 도시와 미리 친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마치 정말 보고 싶은 영화는 예고편조차 멀리하면서 본편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절대 귀찮아서 사전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절대...

첫 목적지는 숙소에서 5분 거리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었다. 안타깝게도 미리 공부하지 못하고 갔던 점을 가장 후회했던 곳 중 하나다. 오디오 가이드를 열심히 들으면서 사원 내부를 꼼꼼하게 관람했는데, 생애 처음 방문한 유럽식 대성당(Cathedral)만 인상적이었을뿐 나머지 영국 역사와 관련된 부분은 스스로의 무지함을 일깨워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큰 여행의 즐거움으로 꼽는 사진 촬영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다소 김 빠지는 첫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Westminster Abbey다들 여기서 이렇게 한 장씩은 찍더라고.

 
실망과 좌절을 뒤로 하고 바로 옆 빅 벤을 향해 걸어갔다. 정각에 정말 Ben이 울리길래 신기해서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문득 종소리를 신기해 하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은 민망해졌다. 시계탑의 종이 정각에 울리는 건 당연한 거잖아?





내 이상한 여행 습관중 또 한 가지는, 목적지간의 이동 수단만을 숙지해 가는 일반 여행객들과는 달리 도시 전체의 지리를 익히기 위해 혼자서 많이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지도를 보면서 걷거나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도로와 건물들의 방향이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물론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길을 익히면서 낯설기만 했던 도시의 풍경들이 하나 둘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 참 좋다. 마치 그 도시에 막 이사온 사람이 도시와 서서히 친해지듯이.

호텔에서 웨스트민스터, 빅 벤을 지나 Horse Guards Parade를 구경하다보니 세인트 제임스 공원 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평일인데도 공원에 한가롭게 앉아서 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졌... 아니, 부러워졌다. 나는 이렇게 몇 천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즐기는 여행인데 이들에겐 일상이라니. 그리고 한참 걸었으니 배가 고파질만도 했다. 커피도 고프고.



이 날 하는 건 다 최초다. 나의 유럽 최초 음식주문! 메뉴는?



먹을 걸 사들고 앉을 자리를 찾았는데 의외로 찾기 어려웠다. 벤치마다 책을 읽거나 쉬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비어 있는 벤치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세인트 제임스 공원이 워낙 넓어서 한참 걸어가다보니 결국 앉을 곳이 나왔다. 호수를 따라 걷던 길에 어찌나 새들이 많던지... (하지만 나중에 갔던 Regent's Park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떼도 아니었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아직 영어가 입에 안붙었는지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격도 은근 비싸고 그래서 그냥 싸고 발음하기 쉬운 머핀이랑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머핀의 종류를 물어보는데 내가 긴장해서 못알아들었다. 지금은 익숙해진 영국식 발음도 저 당시에는 굉장히 낯설게 들렸었다. 잔돈이 동전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하는 말은 다행히 알아듣고 괜찮다고 쏘쿨하게 답해주었다.





Coffee & Muffin. 동전들 때문에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나이가 스물아홉이라 그런지 그거 걸었다고 벌써 다리가 아픈 것 같았다. 호숫가 바람도 시원하고, 휴식하면서 배 좀 채우고, 산책하는 사람들 구경도 할 겸 한참을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가 지금 금요일 오후에 지구 반대편에서 다리 꼬고 앉아서 한가하게 머핀이나 뜯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실감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 벤치에 오랫동안 할 일 없이 앉아있었다. 먹다 남은 버핀을 새들한테 줬다가 새떼 수 십 마리가 득달같이 달려든 덕분에 내가 그 자리를 뜨기 전까지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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