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여행의 기술

zzun 2006. 4. 26.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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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 이레 펴냄


요즘 부쩍 여행에 관심이 많다. 괜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일본 여행 사진을 발견하곤 혼자 막 설레기도 하고, 스물 다섯이나 먹도록 여행도 안다니고 뭐했냐고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한다. 나도, 전역만 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여행한번 제대로 다녀보자!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 프로젝트의 첫 단계가 '여행에 관한 책 읽기'이다. 그동안 보통을 접해보고 싶기도 했고, 제목도 그럴사하니 맵시도 나고 해서 첫 타겟으로 선택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비행기에서 바라본 창 밖을 묘사한 디자인의 겉표지를, 마치 진짜 여행을 떠나듯 넘기며 보통과의 작은 여행을 시작했다.


보통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여행의 시작과 출발에서부터 마지막 귀환까지 꼼꼼하게 짚어나갔다. '여행의 시작은 이렇게 해야돼', '여행 중에 지루하지 않을 자신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여행하거나 사진만 찍어대는 여행은 좋지 않아', '돌아와보니, 주변이 달라보이지?' 뭐, 이런 내용들. 물론 저렇게 단순하게(직설적으로) 쓰여진건 아니지만, 그가 여행중에 사색한 결과물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친절하게 써내려 놓았다. 친절한 여행가이드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보통은 또 발이 넓었다. 보들레르, 플로베르, 워즈워스, 고흐, 호퍼, 버크, 러스킨, 위스망스 등 많은 여행의 선배들과 함께였다. 그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착실하게 여행을 즐겼고, 그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가르치고자 했다. 여행의 기술들을. 여행의 선배로서.

그와의 여행으로 배운 것이 있다.

첫째로 주변을 바라보는 눈. 매일 비슷한 길을 따라 비슷한 풍경을 보면서 지내다보니 지루함과 따분함이 충만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길과 풍경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채색 앙상한 가지들 뿐이었던 출근길 앞산이 오늘 아침 전체적으로는 짙푸르게, 군데군데는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음을 깨닫고서 새삼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감탄하고 그로 인해 기쁨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못믿을까?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말로써 표현하는 습관을 갖기 시작한 것이 스스로도 참 좋다고 느낀다.

또 하나, 여행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는 법을 배웠다. 그동안 여행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머얼리, 이국적인 곳으로 떠나서 '신선한 쾌락'만을 즐기고자 했었다. 하지만 무책임하게 자신를 객지로 던져버리는 그런 여행은 별로 얻는 것이 없고 실망하기 쉽다고 그는 말했다. 내가 그 곳에 가는 동기가 무엇인지, 이번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그 곳에 가서 가지고 돌아와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한 목표 의식을 세우고 나서 떠나야 한다고 말이다.


읽으면서, 초반엔 그의 생소한 문체에 적응하느라 고생했지만 익숙해지고 나서 부터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여행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 혹은 그동안 조금은 허무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읽어보시라. 그리고 나와 함께 기술적인 여행을 떠납시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가보았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곳,
또는 무관심하게 지나친 곳들 가운데 어떤 곳들이
가끔 눈에 번쩍 띄면서 우리를 압도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곳들은 서툴게나마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질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곳은 예쁘지도 않고,
안내 책자에서 아름다운 곳을 설명할 때
흔히 꼽는 분명한 특징 같은 것도 없다.
우리가 여기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 장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 본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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