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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든 새떼를 피해 버킹엄 궁으로 갔다.
정해진 시간에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어쩐 일인지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다른 여행객들도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도 사진 찍으면서 앉아있었는데 영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근위병 교대식이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5초 만에 볼 수 있겠지만..
막상 여행지에서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내가 또 언제 런던에 올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
아쉬운 마음에 근위병을 계속 째려봤지만 정말 미동도 하지 않더라.
철문이 굳게 닫힌 비컹엄 바로 앞 광장에는 근엄한 표정의 빅토리아 여왕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영국의 20세기 중 거의 대부분을 통치한 그녀는 오늘날 '잘사는 영국'을 만든 왕으로서 추앙받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상 곁에는 그녀의 국민들보다 인증샷을 남기는 여행객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저렇게 편한 자세로 노숙(?)하는 분도 계시고...
첫 유럽여행이라 많이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이다.
브레송을 비롯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배경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는 건 맞지만
'좋은 표정'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예쁜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원하는 구도의 사진을 위해서는 용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모르는 사람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아직 너무 어렵다;
이 사진도 벌써 2년 전이구나;
날은 많이 흐렸는데.. 잘생기지 않은 얼굴을 커버하기 위해 선글라스는 벗지 않았다.
한 여름에 보기만해도 땀이 날 것 같은 털모자를 쓰고 궁을 지키는 근위병 두 명.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발을 맞춰가며 앞뒤로 몇 번 왕복하고선 다시 원위치한다.
그런데 원위치하고 나서 봤더니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더라.
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걸 보니 그냥 아르바이트인 것 같은데..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찾아보니 영상 찍어놓은 게 있어서 같이 올린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버킹엄을 에피타이저로 감상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런던의 메인코스를 돌 차례다.
그래서 드디어 도착한 트라팔가 스퀘어!!
내셔널 갤러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유럽의 미술관!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역사적인 건물, 고풍스러운 시가지, 아름다운 야경 정도가 주 관심사였는데
돌아와서 보니 미술관만 잔뜩 돌아보고 온 여행이 돼버렸다.
수 백, 수 천 점의 미술품을 감상하고 지금 기억에 남는 건 몇 장 안되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했다.
'내가 지금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한 가운데서
Christ before the High Priest 라는 작품 앞에 앉아 15분째 같은 그림만 보고 있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정말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과 이렇게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 혼자,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낯선 도시를 탐험한다는 것.
혼자 여행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알지 못할 감정이다.
참고로 내셔널 갤러리 안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다(2년 전에 죄송했습니다;).
중세 미술품을 잔뜩 보고 나와서 감격한 모습(?)의 셀카.
...
- 2010. 08. 20. London, UK -
다음편은 피카딜리부터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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