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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저물어간다는건 참으로 오묘하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내가 살아있었던 8천 7백여일동안 매일 그래왔지만, 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었다. 아니, 어제.
그렇게 사람들은 매일 '끝'을 맞이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함에 있어서도 그저 피곤한 another working day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시작과 끝에 대한 그 어떤 감사함이나 두려움도 없이 말이다.
시작은 쉬웠다. 아니 미치도록 힘들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면 오히려 별로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예 뛰어들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순진하게 뛰어들었고 그런 시작은 나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저 마네킹은 우아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혹은 그렇게 내가 믿고 있지만) 나를 가로막는건 선명하게도 붉은 신호등과 나를 듣이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5톤 트럭이다. 너무나도 분명한 싸인이다. Stop.
촬영한 시각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진을 본다면 둘 중에 하나다. 이른 아침 혹은 이른 저녁. 여명 혹은 노을. 시작 혹은 끝.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은 너무나 닮아 있고 특히 나같이 사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혼동시키기 쉽다. 사실 위 사진은 저녁 무렵 찍은 사진이므로 '혹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는게 아닐까?'라는 기대는 100%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언젠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있는 여명을
희망이 없고 절망감 가득한 '끝'의 싸인이라고 내가 잘못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평생 다시 갖지 못할 단 한번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시작'에 대한 기대를 어리석게도 하고 있나보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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