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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펴냄
익숙한 표지다. 친구의 책장에서, 지하철 앞자리 어여쁜 여인의 손에서, 또 어느 TV 광고에서도 보았던 <상실의 시대>.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이라는건 몰랐지만 어쨌든, 나도 드디어 하루키를 만났다.
거창하게 시작은 했지만 막상 쓸려니 감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읽고도 나의 감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변명을 조금 하자면, 읽은지 이미 몇 주나 지났고 또 그동안 양질의 독서후기들을 많이 읽으면서 보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생각에) 하루키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색을 띄는 성질을 갖고 있어서 이렇게 보면 이런 것 같고 저렇다 하면 또 저런 듯 싶은게 가장 큰 이유다. 일부러 작품 해설 따위는 거의 읽지 않았고 그렇다보니 작품에 대한 감상이 더 애매모호졌을 뿐이다. (내가봐도 참 비겁한 변명이다. -_-;)
아, 읽으면서 생각난게 있었다. 바로 '스무살의 내 모습'. 와타나베(주인공)가 솔직하고 친절하게 얘기해준 덕분에 나도 5년 전의 내 모습을 솔직하게 회상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참 유치하고 바보같고 멍청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리움이란 단어가 떠오르는건 나의 스무살도 그리 헛되지는 않았던 시절임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열렬한 사랑의 감정과 처절한 후회의 눈물보다는 그윽히 아려오는 그리움의 몸서리침이 나는 더 좋다. 이것 또한 '와타나베의 스무살'에 대한 내 질투를 감추고자 늘어놓은 비겁한 변명일진 몰라도, 스물 다섯 나의 솔직한 느낌이다.
<상실의 시대>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20세기 말,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느끼는 묘한 공감. 분명 조금은 낯선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본인의 과거 혹은 현재를 발견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 것 같다. 기숙사에서 아침을 맞이하거나, 친구의 여자친구를 소개받거나, 수업 중에 누군가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거나, 낡은 서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게 되거나, 그녀와 함께 몇 시간 동안이나 정처없이 걷기만 하거나. 그럴때면 나도 <상실의 시대>를 떠올릴 것이다.
The Beatles의 <Norwegian Wood>를 듣고 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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