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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 지음 /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펴냄
요즘의 책읽기 컨셉이랄까, 유명 작가의 책을 한 권씩 섭렵해 가며 일종의 '교양'을 쌓고 있다. 일단 만만하고 쉬운 소설쪽부터 시작했는데 이번 타겟은 프랑스의 여류 작가 '아멜리 노통브'였다.
소설을 읽는 목적이 무얼까. 그 전에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삶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는 머리 아픈 철학 서적이나, 휴일 오후 애인에게 가볍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리법이 적힌 여성 잡지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에 도움이 되므로 그 책을 읽는 행위는 의미가 있다. 쉬운 소설책만 읽는 변명치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유치하지만, 어쨌든 소설 - 혹은 문학 - 에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름의 철학이 담겨져 있으며, 다만 나의 그릇이 너무 작아 '밀란 쿤데라'나 '헤르만 헤세' 같은 고수의 작품은 그 철학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나중으로 미루고 있을 뿐이다. 대신 독자들을 세심히 배려하여 쉽게 쉽게 쓰여진 책들을 보면서 마음 속 철학의 토양을 열심히 다지고 있으니, 언젠가 이 블로그에도 파스칼의 <팡세> 같은 책의 리뷰가 올라올 날이 있지 않을까.
노통브 누님께 죄송할 정도로 서론이 너무 길었다. <敵의 化裝法>이라는 다소 황량한 제목과 붉은 표지가 단연 시선을 끄는 이 책은 짧은 분량의 단편소설로서 <살인자의 건강법>과 함께 아멜리 노통브의 대표작이다. 공항에 앉아 있는 주인공에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 무턱대고 대화를 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별다른 서술 없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방식이 매력적이다.
적(敵). 나도 모르게 아무 근거없이 타인을 나의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던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또 누군가에게 적이 되지는 않았는가, 도 생각해 보았다. 단순히 윤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죄악를 범하지는 않았는가, 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나는 누구를 적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었다. 나 자신이 바로 적이었으므로.
화장법(化裝法). 사춘기 시절부터 갖게 된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또 깨야만 하는 질문일 것이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 타인에게도 물론이거니와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나'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누구나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각자의 화장법이 있고 그 꾸미고 가꾸어진 모습을 우리는 그 사람의 본 모습이라고 믿어버린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깊은 관계의 친구에게 조차도 옅은 화장은 하고 대하기 마련이다. 발가벗겨진 나의 치부는 드러낼 수 없다는 본성이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주인공 '제롬 앙귀스트'에게 나타난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적이 매우 인상적이지만 더욱 놀라운건 바로 '제롬 앙귀스트' 본인이다. 놀라운 반전.
이 소설을 통해 얻게 된 '삶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진정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얼핏 보면 그냥 재미는 있지만 건질건 없는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네 책방에서 빌린 만화책을 읽고 그 사람의 인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면 그 '독서'는 엄청난 가치의 행위이다. 고로 이 지겨운 일상 중에 짬을 내어 작은 책으로부터 큰 의미를 찾아내려는 것이 나의 야심찬 노력이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그 노력의 구체화된 모습이자 과정이다.
다음으로 읽을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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