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인생의 연결고리

zzun 2014. 9. 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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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0일에 쓴 글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5-6살 정도가 자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일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게 컴퓨터 메모리와는 달라서, 정확하지도 선명하지도 않지만 다 잊은 것 같은 기억도 어떤 계기로 다시 살아나곤 한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을 얘기해보자면, 보조바퀴가 달린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기억, 일요일마다 두류공원에 테니스를 치러 가던 아버지를 따라 갔던 기억, 그 앞 매점에서 늘 컵라면을 사주셨던 기억, 여름이면 늘 가까운 계곡에서 텐트치고 물놀이 했던 기억...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30대의 젊은 아버지 얼굴이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도 한 달 보름 뒤면 아빠가 된다. 이제는 불금의 강남역보다 주말의 여유로운 브런치가 더 익숙한 나이가 되었다. 내 아이도 머지않아 옹알이를 할테고, 첫 걸음마를 뗄 것이고, 나와 함께 공원에서 신나게 공놀이도 할 때가 올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과 오버랩되어 마치 두 장면이 영화의 편집점처럼 서로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인생의 연결고리랄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삶은 늘 미지의 세계였다. 학교란 어떤 곳일까, 중학교에 가면 무엇을 배울까, 대학생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군대가면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그리고 결혼하면 어떤 기분일까. 마지막으로 지금은 2세가 생긴 후의 생활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우리 딸이 걸어다닐 때 쯤이면, 그 때부터는 내가 30년간 보아왔던 아버지의 인생이 그대로 나에게 반복될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진다. 마치 30분동안 재밌게 영화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아주 오래전에 봤었던 영화의 리메이크작임을 깨달은 것 같은? 아무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낀다.


30년 전에는 미처 몰랐다. 힘있게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시던 아버지가 이렇게 달리기도 못하시게 될 줄은. 내 인생의 화려한 중반부도 중요하지만, 아버지라는 영화의 아름다운 엔딩을 위해서 많이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딸의 멋진 오프닝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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