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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기경님과의 어떤 추억이 있는 건 아니다.
대구에 있을 때는 만날 기회가 없었고, 서울로 왔을 때도 추기경님이 집전하는 미사를 드린 적이 없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 성탄전야미사를 명동성당에서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는 정진석 추기경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민주화항쟁 시절엔 초등학생 정도였으니 그의 활약(?) 또한 기억할리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고인에 관한 글을 쓰는 건 오로지 내 양심 때문이다.
사실 추기경님의 선종에 관한 언론들의 끊임없는 보도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물론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지만 모든 신문, 방송에서 이렇게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할 줄은 몰랐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서 특정 종교의 지도자가 이렇게까지 공식적인 존경을 받은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공중파 방송에서 뉴스는 물론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엄연히 종교의식 중의 하나인 장례미사까지 생중계 해준다고 한다.
이는 고인을 단순한 종교지도자가 아닌 나라의 큰 어른(어느 앵커의 표현)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원래 어제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가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는데,
전날까지 10만명이 다녀갔다고 하는데서 한 번 놀랐고,
조문객 줄이 성당 밖으로 1km 이상 서 있다고 하는데서 또 한 번 놀랐다.
회사 사정으로 결국 조문을 갈 수는 없게 되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주말에 추모미사 참례로 대신하려고 한다.
나는 그리 독실한 신자는 아니다.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적도 많고 성경에 나오는 교리를 100% 믿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마음이 경건해지고 나를 천천히 돌아볼 수 있어서,
그리고 삶 속에서 무언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념의 대상으로 삼고 의지할 수 있어서
'나는 성당에 다닙니다.' 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추기경님의 선종에 대한 일련의 반응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러한 큰 존경을 받는 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진심으로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과 내가 동등한 신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결국 나는 스스로의 양심에 의한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고인께서 마지막으로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주신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명동성당 내부에서 기다리는 조문객(출처:연합뉴스)
명동역 부근까지 늘어선 조문객 행렬(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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