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un.net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
갇혀 있는 새가 성말라 야위듯이 두루미 속의 술이 삭아서 식초가 되듯이 교도소의 벽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날카롭게 벼리어놓습니다. 징역을 오래 산 사람치고 감정이 날카롭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감정이 폭발할 듯 팽팽하게 켕겨 있을 때 벽은 이성(理性)의 편을 들기보다는 언제나 감정의 편에 섭니다. 벽은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산화(酸化)해버리는 거대한 초두루미입니다. 장기수들이 벽을 무서워하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벽의 기능은 우선 그 속의 것을 한정하는 데 있습니다. 시야를 한정하고, 수족을 한정하고 사고를 한정합니다. 한정한다는 것은 작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넓이는 좁아지고 길이는 짧아져서 공간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결국 한 개의 점으로 수렴케 하여 지극히 단편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편향을 띠게 합니다. 징역 사는 사람들의 첨예한 감정은 이러한 편향성이 축적, 강화됨으로써 망가져버린 상태의 감정입니다. 망가져버린 상태의 감정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관계되어야 할 대립물로서의 이성과의 연동성이 파괴되고 오로지 감정이라는 외바퀴로 굴러가는 지극히 불안한 분거(奔車)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짝을 얻지 못한 불구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망가진 상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히 시계를 떨어뜨려 복잡한 부속이 망가져버렸다면 시계의 망가진 상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복잡하다는 명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벽으로 인하여 망가진 감정을 너무나 단순하게 처리하려 드는 것을 봅니다. 감정을 이성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성에 의하여 감정을 억제하도록 하는, 이를테면 이성이라는 포승으로 감정을 묶어버리려는 시도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것은 대립물로서의 이성을 대립적인 것으로 잘못 파악함으로써 야기된 오류입니다. 감정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낮은 이성에는 낮은 감정이, 높은 이성에는 높은 감정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하여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하여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이라 합니다.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역시 감정이라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이성의 계발(啓發)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감정에 기초하고, 감정에 의존하여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벽의 속박과 한정과 단절로부터 감정을 해방하는 과제와 직결됩니다.

그러면, 절박하고 적나라한 징역현장에서 이성의 계발이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며, 비정한 벽 속으로부터 감정을 해방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행위를 뜻하는가. 지극히 당연한 의문에 부딪칩니다. 아마 우리는 이러한 추상적 연역에 앞서 이미 오랜 징역 경험을 통하여 그 해답을 귀납해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해답이란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한마디로 말해서 징역 속에는 풍부한 역사와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견고한 벽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각양의 세태, 각색의 사건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현존하는 모든 고통과 가난과 갈등을 인정하도록 하며, 그 해결에 대한 일체의 환상과 기만을 거부케 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적 자유, 즉 이성을 얻게 해줍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가슴들은 그 완급(緩急), 곡직(曲直), 광협(廣狹), 방원(方圓)으로 하여 우리를 다른 수많은 가슴들과 부딪치게 함으로써 자기를 우주의 중심으로 삼고 칩거하고 있는 감정도 수많은 총중(叢中)의 한 낱에 불과하다는 개안을 얻게 하고 그 협착한 갑각(甲殼)을 벗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사건에 매몰되거나 각자의 감정에 칩거해 들어가는 대신 우리들의 풍부한 이웃에 충실해갈 때 비로소 벽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다가 하늘을 비추어 그 푸름을 얻고, 세류(細流)를 마다하지 않아 그 넓음을 이룬 이치가 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산사신설(山寺新雪)이 냉기를 발하던 1, 2월 달력을 뜯어내니 복사꽃 환한 3, 4월 달력의 도림(桃林)이 앞당겨 봄을 보여줍니다. 반갑지 않은 여름 더위나 겨울 추위가 바깥보다 먼저 교도소에 찾아오는 데 비하여 봄은 좀체로 교도소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언덕과 산자락에는 벌써 포근히 봄볕 고여 있는데도 담장이 높아선가 벽이 두꺼워선가 교도소의 봄은 더디고 어렵습니다.

1983. 3. 15.
=====================================================================================================

며칠 전에 이 글을 읽고선 꼭 메모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실천에 옮긴다. 나와 같은 생각을 나보다 먼저 한 사람이 있어서 난 편하게 긁어오기만 했다.

"감정을 억압하기 보다는 이성을 계발하여 높은 수준의 이성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감정으로 낮은 수준의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

요즘들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으로 고민하던 나에게 참으로 시의 적절한 말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아직 완독하진 않았지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놀라운 사색의 결과들을 읽다보면, 감옥의 벽은 수족과 사고를 한정하긴 하지만 동시에 훼방꾼이나 외부 자극을 차단하기 때문에 바깥사람들보다 더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사고의 기반을 갖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겠지만.

'스크랩북 > 유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 속의 이성과 감정 - 신영복  (0) 2007.11.10
꿈과 비전  (0) 2004.06.20
국비유학생 체험수기  (0) 2004.04.23
나의 꿈 (문병로 교수님)  (3) 2004.04.22
구분 / 구별  (1) 2004.03.06
Money  (1) 2003.09.26

Comment +0

Ricanet.com에서 순보가 퍼온걸 다시 퍼옴.

--

+꿈과 비전 (bin/article/Dream_Vision)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김종원 교수님의 글이라는데,
원문출처 찾을 수 없음.


--------------------------------------------------------------------------------

또다시 한 학기가 끝났다. 이제 곧 자네들은 나름대로의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 학교를 떠날 것이다. 그런 자네들에게 이번 여름에는 필히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만들고 돌아 오라고 외치고 싶다.

자네들은 곧 이 교정을 떠나서 사회로 나갈 것이다. 대학원을 진학하든 산업체에 취직을 하든 그것은 당장 눈 앞의 진로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네들이 과연 20년 뒤에 자기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과 연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학부생들이 그러한 꿈과 비전이 없이 이 순간 그저 학기말 고사나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네들은 과연 학기말 고사 공부를 하는 정도의 시간과 노력만이라도 자네들의 꿈과 비전을 굳히기 위해서 투자를 해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한번만이라도 대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쓴 책을 읽고 나도 20년 뒤에는 바로 이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꿈꾸는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저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현실에 좌절하면서 20년 뒤에는 없어지겠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점점 더 포화 상태로 치닫는 경제 현실에서 아무런 꿈과 비전 없이 그저 친구들이 하는 말이나 신문에서 떠드는 피상적인 기사에 자네들의 소중한 미래를 맡기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된다.

서울공대에 와서도 여전히 평균적인 위치의 엔지니어의 모습을 자네들의 미래의 소박한 꿈으로 삼고 나도 20년 뒤에는 혹시 회사에서 짤려나는 것은 아니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졸업을 기다리지나 않는지 걱정이 된다. 왜 자네들은 서울공대생으로서 20년 뒤에 top 1% 이내에 드는 CEO, 전문 연구직, 교수, 창업가 등을 꿈꾸지 않는가? 왜 자네들은 지금 이 순간 자네들 나름대로의 큰바위 얼굴을 그리지 않는가? 왜 사회 현상만 탓하고 있는가? 과연 자네들은 얼마나 자기 자신의 꿈과 비전을 확실히 세우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던가?

20년 뒤의 자기 자신의 모습, 즉, 꿈과 비전이 가슴 속에 확실하게 없는 상태에서 지금 죽을 힘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면, 결국 평균적인 위치의 엔지니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서울대를 없앤다고 난리를 쳐도 자네들은 top 1% 엔지니어가 되어 리더그룹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리더가 필요하다. 나는 자네들이 바로 이런 리더가 되기를 원하며, 그런 리더가 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엔지니어로서 20년 뒤의 자네 모습으로서 결국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종류의 모습을 꿈꿀 수 있다:

- [대기업 CEO] Global top class 대기업의 CEO 또는 핵심 중역이 되어 활동한다.
- [창업가] 기술 기반의 top class의 세계적인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엄청난 돈을 번다.
- [전문연구직] 세계적인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팀장으로서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 [교수] 세계적인 대학교에서 훌륭한 교수가 되어 교육과 연구에 몰두한다.
- [전문행정직] 공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top class의 변호사가 되거나 정부 관료가 되어 기술문제가 개입된 법적 소송을 처리하거나 중요한 국가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한다.

여기서 제발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나 하는 멍청한 소리를 좀 하지 말기 바란다. 큰바위얼굴 소년은 자기가 큰바위얼굴이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다면 도대체 자네들은 20년 뒤에 무엇이 될 것이냐고 묻고 싶다. 축구 선수는 골대가 있기 때문에 90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공을 찬다. 자네들은 A학점을 꿈꾸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서 시험 공부를 한다. 고등학생들은 서울대 합격하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한다.

내가 과연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은 결국 모두 다 공을 넣는 것은 아니고, 시험도 다 잘 보는 것은 아니며, 서울대말고도 다른 대학도 많은데 왜 내가 죽을 힘을 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실패를 두려워 하면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가야 하며, 결국 아무런 목표가 없이 살아가도 결국 20년 뒤에 어떠한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놈의 인생은 단 한 번의 기회 밖에 주지 않는다. 자네는 이런 이유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20년 뒤에 그냥 되는대로 살면서 그 때도 여전히 이 놈의 사회가 이래서 안 된다고 푸념할 것이냐? 그 때가서도 여전히 사회보고 책임을 지라고 할 것이냐?

위의 다섯 가지의 모습 중에서 어떠한 것도 자기 가슴에 공진과 같이 와 닿는 모습이 없으면 하루 속히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래 다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학기말 고사 준비하는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위의 다섯 가지 길을 간 사람이 쓴 책도 읽고 인터넷도 검색하고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자네의 꿈과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손톱만큼의 노력은 해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혹시나 부모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그저 지나가면서 던지는 그 한마디에 엔지니어로서는 나는 이런 모습이 될 것이야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그저 언론에서 걱정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서 자네도 같이 걱정하며 주저앉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이공계 기피 현상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네들의 꿈과 비전이 없음이 더 걱정이다.

도대체 자네 인생은 누가 살아 주는가? 친구가, 부모가, 신문이? 도대체 자네의 꿈과 비전을 누가 만들어 주는가? 친구가, 부모가, 언론이? 꿈과 비전은 참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역학 문제 풀듯이 unique한 정답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제발 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위의 다섯 가지 길을 가고 있는 현재의 선배들이 쓴 책들을 위인전처럼 읽거나, 인터넷을 뒤지거나, 직접 인터뷰를 해서라도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각각 그 길로 갔으며, 지금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를 바란다 (첨부 목록 참조).

대기업 CEO, 창업가, 전문연구직, 교수, 전문행정가 등의 다섯 가지 모습에 대해서 적어도 각각 세 사람 정도를 정해서 철저하게 그 사람에 대해서 탐구를 해보라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를 모르고 어떻게 창업가가 되겠다고 할 것이며, 화성 탐사선 프로젝트 팀장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르고서 어떻게 전문연구직이 되겠다고 할 것이냐? 성공한 창업가가 돈을 과연 얼마나 버는지 자세히 알고는 있느냐? 빌 게이츠가 돈 많이 버는 것은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그 밖의 창업가는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고는 있느냐?

다섯 가지 길을 간 사람들의 모습을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자네들 나름대로의 20년 뒤의 모습이 그래도 더 확실하게 잡힐 것이다. 이것은 마치 5명의 여자 또는 남자 친구 후보들 중에서 누구를 마지막에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과 같다. 각 5명을 만나보고 이야기 해보고 해서 점점 더 잘 알수록 이 여자 또는 남자야 말로 정말로 내 친구로 삼고 싶다 하는 마음이 확실해 진다. 그런 노력도 없이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어떻게 결정을 하겠느냐? 자기 나름대로의 꿈과 비전을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절대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도의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결정이다..

그 꿈과 비전은 가슴 벅찬 그런 것이다. 그러나, 실현하기에는 지금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아 정말로 나는 이런 굉장한 모습이 되고 싶다 하는 그런 것을 찾아야 한다. 술 먹고 방 구석에 쳐 박혀서 천장만 쳐다보면 꿈과 비전이 가슴 속에 저절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에 영어 회화 공부나 해야 하겠다고 하는 계획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여름 방학 끝나고 학교로 돌아 올 때에는 이 가슴 속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게 각인된 그런 꿈과 비전을 새기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런 꿈과 비전이 확실하면 2학기에는 무슨 과목을 수강할 지부터 시작해서, 군대는 언제 어떻게 가고, 대학원을 갈 것인지, 유학을 갈 것인지, 회사는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 것인지 등등의 모든 결정이 쉬워질 것이며, 그 보다도 더 지금 이 순간 자네가 하고 있는 모든 공부와 사회활동에 대한 의미가 생기며, 비로소 고등학교 3학년 때처럼 또다시 미래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 해야 하겠다고 하는 동기가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도대체 영어 회화 공부는 왜 하려고 하는가? 토플 토익 성적 높이려고? 이런 동기로 영어 공부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지만, 20년 뒤에 Global top class 대기업의 CEO로서 세계 각국에서 집결된 임원급 회의를 할 때를 위해서 영어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자네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자네의 특권이다. 그런데, 서울공대생인 이상 그러한 찬란한 미래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의무 사항이기도 하다. 그것은 군대 가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자네들에게 지워지는 무거운 짐이기도 한 것이다.

'스크랩북 > 유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 속의 이성과 감정 - 신영복  (0) 2007.11.10
꿈과 비전  (0) 2004.06.20
국비유학생 체험수기  (0) 2004.04.23
나의 꿈 (문병로 교수님)  (3) 2004.04.22
구분 / 구별  (1) 2004.03.06
Money  (1) 2003.09.26

Comment +0

미국 국비유학(4년)-박사후과정(1년2개월)-직장생활(3년9개월)을 마치고  


등록자 백종범 (38) 조회 3515
수학국가    미국 전공    Polymer Chemistry (고분자 화학)
등록일    2003-11-04 오후 7:13:17 삭제예정일    2004-05-31



저는 93년도 국비유학시험에 합격하여 94년 8월부터 98년 8월까지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98년 9월부터 99년 10월까지 미국소재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후 99년 11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9년 수일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8월 말에 귀국하여 9월 1일부터 국내 모 국립대학에서 교편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이 경험하신 것들과 제가 경험한 것과는 거의 대부분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와 보니 이미 여러분들께서 좋은 글을 많이 올려놔서 제 글이 여러분들께 특별한 도움이 되리라 곤 생각지 않습니다만, 제 기준에서 절실했던 부분만 몇 가지 글로 올리고자 합니다.

1. 유학준비

(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습니다) 비록 액수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저한테는 국비장학금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유학이 제게는 사치였거든요. 대학을 가는 것조차도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공부 할 때는 쉽게 돈벌 수 있는 과외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벌면서 대학 다니는 것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방학이면 막노동부터 학기 중 파출소에서 심야 방범대원 등으로 용돈과 학비를 벌었습니다. 물론 아무리 아껴 모아도 학비는 충분치 않아 부족한 부분은 부모님과 어렵게 살고 계시는 형제들께서 도와 주셔서 겨우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대학 3학년 때 다행이 국내 대기업에 인턴사원으로 채용 되 졸업 후 입사를 조건으로 소액의(지금생각으로) 학비보조를 받았습니다. 매달 용돈으로 2만원 정도 밖에 지출 할 여력이 없던 저한테는 꽤 많은 액수였기에 적립이 가능했습니다. 대학교 4년 때 취직은 되어 있고 약간의(일 백 만원 미만) 돈은 있고 해서 이 돈으로 세상 경험이나 하자해서 왕복 비행기표 한 장 달랑 들고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여름방학 두 달 동안 개인적으로 해외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 것이 제가 계속 공부하게된 동기를 부여해 줬습니다. 왜냐고요? 모 기업회장님이 쓰신 책 중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몸으로 체험했으니까요. 하루하루 어떻게 살까 고민하기 바빠 내가 살고 있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준비해서 좀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를 해보자고 결심을 했고 준비기간을 가지기 위해 부랴부랴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다행이 제가 대학원 진학하던 바로 전해에 과외 금지가 풀렸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 있게 대학원 생활과 유학준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대학원 졸업하던 93년 초에 미국 몇몇 주립대학에서 입학허가는 받았지만, 가진 것이 없어 그 해에 갈 수가 없었고 입학을 연기했습니다. 다행이 그 해(93년)에 국비유학시험에 합격하여 94년 여름에 미국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2. 유학생활 (1994.8-1998.8)

약 여섯 개의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그 중에는 공부마칠 때까지 자비로 공부하겠다는 서약서를 먼저 보내와 여기에 서명하여 보내주면 I-20를 보내주겠다는 대학도 있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해 주겠다는 대학은 학비가 무지 비싼 명문 사립대와 학비가 싼 주립대 두 곳이었습니다. 이 두 대학을 두고 어딜 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비록 학비와 생활비를 학교에서 보조를 받는다고 합니다만, 국비장학금으로는 명문 사립대학이 소재한 지역에서, 현실적으로 집에서 재정보조 없이 버티기가 힘들다고 여겨졌기에 학비가 싸고 생활비가 적게드는 오하이오 소재 주립대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고 제 짐작과 주위 조언을 통해 내린 선택이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이 제가 학위를 마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혹 여러분 중에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더라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행이 입학을 하고 보니 제가 다닌 대학은 제 전공분야 특성대학으로 주변 지역에서 관련있는 군 소기업들과 주 정부 막대한 후원으로 대학원생 전원 (국비, 회사 비, 자비 관련 없이)에게 일괄적으로 학비면제와 심지어 주차비까지 학교에서 지불 할 정도로 재정적인 여력이 풍부한 대학이었습니다. 또 지도교수님께서 RA로 연간 $16000+을 지급하셔서 국비를 포함해서 연간 소득이 $30000이 넘었기에 IMF 기간에도 어려움 없이 공부에만 전념 할 수 있었고 4년 만에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4년 차에는 국비지원은 이미 끝이 났고 (3년간 지급), 학교에서 지급하는 RA와 그간 조금씩 여유 있을 때 (첫 3년간) 모은 자금도 바닥이 났습니다. 그래서 학비(무료)이외에 4년 간 들어간 비용을 합해보면, 출국시 막 노동 등으로 저축한 돈과 친지들로부터 받은 학비보조금을 합해서 가져간 초기 정착자금 $4000을 포함해서 약 $100000+이었던 것 갔습니다. 그 사이에 처와 딸이 생겼습니다. 본국에서는 단 $1의 지원도 없었고 연로하신 (~80세) 부모님 용돈으로 $1000+를 본국에 송금한 적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아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적으로 순수하게 국비에만 의존하기에는 년 간 국비지급액수가 작고 국비 지급기간(3년)이 현실적으로 학위를 취득하는데 걸리는 기간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연간 국비 지급액은 아주 학비가 저렴한 주립대 학비 충당하기에도 부족한 액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3년에 마치는 사람도 가끔씩 있기는 합니다만 평균 4년 이상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지급기간이 최소한 4년 이상이어야 할 것 갔습니다. 우리보다 국력이 약한 태국도 4년 간 $100000을 지급하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15년 이전에 책정된 금액을 지급한다고 하니 너무나 현실과는 맞지 않고 국비유학이라는 의미도 상실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유학하는 동안 만난 자비유학생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액수인 것 갔습니다. 머니머니해도 Money가 걱정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인 것 갔습니다. 당국에서는 차라리 각 지역의 생활비와 각 학교의 학비를 고려해서 실비로 지원 해 주시는 것도 우수한 인력을 국가에서 양성하는 취지에서 볼때 바람직 할 것 같습니다.

3. 박사후 과정 (1998.9-1999.11)

박사후 과정은 학위를 마쳐 가는 시기에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계시는 유명한 교수님들이나 대형연구소 연구원들과 교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실 경우 연구실적을 올리기가 용이한 반면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운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본인이 장래 희망하는 직업에 따라 현명하게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경우를 예로보면, 1년 약간 넘게 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면서 카드 빛이 약 $10000까지 늘어났습니다. 왜냐하면 부양해야 할 가족이 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지급하는 박사후 과정의 연봉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보통 학교에서 지급하는 연봉은 그 지역 실정을 고려하여 혼자 살기에 충분한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우수한 교수님과 박사후 연수 과정을 경험하고자 하는 분 중에 가족이 있는 분은 집안 혹은 국가에서 보조가 필요한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봉이 두 배 이상인 국립연구소나 기업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경험하시는 것도 재정적으로는 훨씬 유리하고 거대한 조직속에서 생활하면서 아주 폭 넓은 경험을 하기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또한 이들이 추구하는 연구의 목표와 방향을 거시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최고인 것 같습니다.

4. 직장경험 (1999.12-2003.8)

다행이 제가 학위과정 중 수행한 연구분야가 미국 우주항공국(NASA) 관련분야였기에 쉽게 그곳으로부터 일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동시에 다른 국립연구소에서도 일자리를 제안 받아 여러 여건을 종합한 후 후자를 선택해서 약 4년 간 근무하면서 박사후 과정을 학교에서 수행하면서 발생한 빛도 정리하고 여력이 있는 자금으로 조금씩 연금도 들고해서 여유 있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에 먹고 살 만큼 연봉도 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제가 소속된 연구분야에서 연속 3년 최고 실적을 올려도 외국인인 경우에 그 실적에 상응하는 승진이나 보상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대조직에서 외국인으로서의 한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여하튼 이 기간동안 거대 조직내에서 값진 많은 경험도하고 둘째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5. 귀국 (2003.8-)

귀국을 하여 일가 친지 친구들을 만나니 저더러 세상을 거꾸로 산다고들 하더군요. 요즘 교육문제로 외국이민이 유행인 시기에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 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남의 밥에 콩이 더 커 보인다고 체험하지 않고 막연한 상상만 가지고 어떤 사회를 동경하는 것은 위험 한 것 갔습니다. 미국이 교육 선진국임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국에서 소수민족이 뿌리를 내리고 자기성찰을 원만하게 이루면서 살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동남아인들이 받는 설움을 생각해 보시면 다소 이해가 갈 것입니다.

6. 글 후미

제가 나고 자란(아직 부모님께서 살고계심) 산골 고향에서는 제 가방 끈이 제일 깁니다. 9년여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처음 맞는 추석에 고향을 가니 이장 님께서 산골 마을의 영광이라며 플랜카드를 걸어 주셨더군요("본동 출신 백종범의 박사학위 취득과 XX대학교 교수부임을 축하합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초등학교 (국민학교, 제가 어릴적 표현) 2학년 때 전기가 들어온 산골에서 나고 자라서 외국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을 축하 한답니다.

부족한 저에게 공부 할 기회를 준 교육부와 교육부 담당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말없이 묵묵히 내조해준 집사람과 늘 기쁨을 주는 아이들,끝없이 후원해 주신 부모님, 형제, 일가, 친지, 친구, 지도 교수님, 그리고 (미국)직장동료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출처 : http://yuhak.ied.go.kr/space/kookbi/sugi/kookbi_sugi_list.asp

'스크랩북 > 유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 속의 이성과 감정 - 신영복  (0) 2007.11.10
꿈과 비전  (0) 2004.06.20
국비유학생 체험수기  (0) 2004.04.23
나의 꿈 (문병로 교수님)  (3) 2004.04.22
구분 / 구별  (1) 2004.03.06
Money  (1) 2003.09.26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