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키친

zzun 2003. 1. 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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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저
김난주 역
민음사

- 기억에 남는 부분 -

<키친>

 나는 담요를 둘둘 말고, 오늘밤도 부엌 옆에서 자는게 우스워 웃었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잠자리만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외로움이 커지니까 안 된다. 하지만 부엌이 있고, 식물이 있고, 같은 지붕 아래 사람이 있고, 조용하고…… 최고다. 여긴 최고다.
 나는 안심하고 잠들었다.


-> 세상에 혼자 있다. 남에게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 적당히 외로울만큼 외롭고, 적당히 의지할만큼 의자하는 그런 생활... 부엌이 있고, 식물이 있고, 같은 지붕 아래 사람이 있고, 조용한.. 그런 곳이라면 나도 마음에 들 것 같다.

 깨끗하게 치워진 내 방을 비추는 햇살, 거기서 이전에 살았던 집 냄새가 났다.
 부엌 창, 친구의 웃는 얼굴, 소타로의 옆 얼굴 너머로 보였던 대학 교정의 싱그러운 녹음, 밤늦게 거는 전화 저편에서 들리던 할머니의 목소리, 추운 날 아침의 이불, 복도로 울리는 할머니의 슬리퍼 소리, 커튼의 색…… 다다미…… 벽시계.
 그 모든 것. 이제 거기에 있을 수 없어진 모든 것.


-> '잊을 수 없는 과거'라는 것에 애정이 간다.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너무 슬픈거지만, 그 느낌은 참 좋을 것 같다.

<만월>

 에리코 씨가 없는데도 두 사람 사이에 그 시절의 명랑한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유이치는 돈까스 덮밥을 먹고, 나는 차를 마시고, 어둠은 이미 죽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것으로 족했다.

->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의 죽음. 그 나머지 사람들끼리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나갈 때.. 얼마나 허전할까.
 참... 부럽다.

<달빛 그림자>

 그래도, 그래도 그때 나는 눈앞에서 미소짓는 우라라를 보면서, 엷은 커피 향 속에서, 자신이 <무언가>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바람에 창문이 덜컹덜컹 흔들린다. 그것은, 헤어질 때의 히토시처럼, 아무리 마음을 열고 눈에 힘을 주고 보아도 확실하게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그 무언가는 태양처럼 어둠 속에서 강하게 빛나고, 나는 엄청난 속도로 그곳을 통과한다. 찬송가처럼 축복이 내리고, 나는 기도한다.
 <훨씬 더 강해지고 싶다>고.


-> 남은 사람들이 해야할 일은 뭘까. 그들을 그리워하며 눈물흘려 주는 것? 그들을 잊지 않는것?
 물론 그런것들도 중요하겠지만, 정말이지 세월은 누구를 위해 멈춰주지 않는다. 그렇게 눈물흘려주고 그들을 그리워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훨씬 더 강해져서, 그들에게 자랑스러워져야 한다. 그게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인 것 같다.

- 감상 -

 요즘들어 왜 이리 죽음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지 모르겠다. 우연이면서도 왠지 운명적인것 같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키친>,<만월>,<달빛 그림자> 세 편의 소설로 된 이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 라는 작가는 어떤 작가다 라는걸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키친>과 그의 후속작 <만월>에서는, 가족의 죽음에 관한 얘기다. 내가 만약... 혈육이 단 한명 있다고 생각했을때... 그 혈육이 지금 막 세상을 떠났다면, 과연 어떨까. 세상에 혼자 버려진 기분? 잘 모르겠다. 다만, 생각하기조차 싫을만큼 어두운 상황인건 확실히 알겠다.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의 입장에 푹 빠지는 편이라... 슬프기도 하고 캄캄하기도 하고 그랬다. 근데, 그 느낌이.. 깊게 와닿지는 않는다. 아마도, 난 아직 따뜻한 가족과 함께 행복 안에 살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 그냥 막연히... '그러한 때를 준비해가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 만은 없으니...
 <달빛 그림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얘기다. 이것도 읽을 땐 참 슬펐는데,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앞의 이야기보다 더 와닿지 않는다. 이런 내가 좀 안타깝다.
 잘 모르지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일본 신세대 문학을 대표한다고 한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감동을 자아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감동이 깊지는 않았고... 그치만, 나 정도의 사람이 읽기에는 충분히 좋았다. ^^;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나가는 느낌이다. 더 많은 책을 읽다보면 나랑 딱 맞는 작가와 책을 찾을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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