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07년 2월 26일 일기

zzun 2007. 2. 27.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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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춥지만 이른 오후 거리를 거닐면 진열된 봄옷들이 자꾸 나를 유혹한다. 여민 옷깃을 파고들던 매서운 바람이 아닌 두꺼운 외투를 살며시 벗겨내는 따뜻한 기운의 봄바람이 조금씩 느껴진다.

어제는 조금 일찍 잠들려 했다. 전날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마음도 많이 차분해져서 잠이 잘 올 것 같은 느낌에 불을 끄고 누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시계 초침 소리 외에는 고요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 공허한 생각들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럴수록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져만 갔다. '이러면 잠들지 못하는데' 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일어나서 음악을 틀었다. 아주 조용하고 잔잔한, 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은 노래들을 자장가로 골랐다. 효과가 있었는지 금새 잠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긴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너와 같이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던 현실과는 다른, 내가 원하던 이상과는 같은 그런 꿈이었다. 역시나 두달 전 그 꿈처럼 똑같이 너는 내게 살며시 기댔고, 나는 아침이 되어 눈을 뜨고서도 한참동안이나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꿈이었다는걸. 그리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이제 니 꿈은 그만 꾸고 싶다' 였다. 멜로 영화를 보는게 아니었다.

그렇게 오전은 비몽사몽 간에 지나갔고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저녁까지 이런 저런 할 일들을 하고 또 밤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심장 박동은 여전히 빨라진 채 그대로였고, 오늘도 역시 일찍 잠들 것만 같은 컨디션이었지만 아직 눕지 못하고 있다.

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걸까. 상처받는 것?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슬픔 감정에 빠져드는 타입이 아닌가. 오히려 슬픔을 즐길지도 모른다. 정말 두려워하는건 아마 '어색해지는 것'일거다. 다른건 몰라도 그것 만큼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일부러 퉁명스럽게 건네는 인사조차, 가끔씩 마주치는 시선조차, 멀리서 바라보는 너의 미소조차 빼앗긴다면 그 선택을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아서. 그게 나는 두려운가 보다.

어제는 봄옷을 조금 샀다. 이번 겨울 내 입었던 두꺼운 외투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3월부터는 그 외투를 입지 않을 생각인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무거운걸 어떻게 입고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봄이고, 개강이고, 새로운 시작이다.

어떤 식으로 끝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다가서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하고 생각만 자꾸 많아진다. 너를 가운데 두고 그 주변을 일정한 거리를 둔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길게 끌고 갈 자신이 없다. 가능하면 조만간 매듭을 짓고 싶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고 있다. 너를 좋아하는데에.

3월이다. 봄이다. 개강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이라...

이제 그만 자야겠다.

오늘 밤엔 나타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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