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일기

2013.12.31 02:51일상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며 로션을 바르다 문득 손이 멈춘다. 매일 바라보는 내 얼굴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거울을 보는 나의 시선은 늘 나의 뺨이나 수염난 턱, 부쩍 자란 머리카락만 향했었지 나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한참이나 내 눈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나이가 들 수록 눈빛이 깊고 그윽해진다고 하는데, 내 눈빛도 어느새 한 가지 색이 아님을 깨닫고 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삼십 여 년을 아둥바둥 살아온 것일까?


삶의 시작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삶의 끝은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비록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삶이지만 그 속에서 모두들 각자의 의미를 찾아 삶을 꾸려나가게 마련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암묵적으로 장남, 아들, 형, 공부잘하는 친구, 나중에 성공할 친구, 우리 집안을 일으킬 재목이라는 이름들 속에 살아왔다. 자연스레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산더미처럼 크게 내 머릿속을 차지했고, 모든 말과 행동은 나를 희생하여 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나는 그 속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았고, 가족과 친구들이 행복해하고 나를 자랑스러워 할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한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내 '삶의 의미'였다면, 이 사람은 내 '삶의 이유'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의 의지로 말하고 행동하며 그러한 삶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의미'를 부여했던 과정이었는데, 살아가는 '이유'가 생기고부터는 거꾸로 그 이유를 위해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바뀔 수 있음을 깨달았다. 존재하는 것에 의미를 찾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 모든 존재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삶에 찌들어서인지 그 이유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다시 커다른 의무와 책임감으로 변형시켜 버린 것 같다. 평생 어깨에 들고 있던 짐을 이제 내려놓으라고 하는데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고, 오히려 내 앞에 있는 커다란 행복마저 또 어깨에 짊어지려고 했나보다. 어깨가 아니라 두 팔 벌려 가슴으로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 사람인데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해진다.


로션을 바르다 말고 노트북을 열고 시덥잖은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진다. 이제 거울을 보니 낯설지 않은 평소의 내가 보이는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잘 수 있을 것 같다. 등 돌리고 먼저 잠든 아내에게 얼른 다가가 누워야겠다.